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빈 이씨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[[조선]] 제21대 [[조선/왕사|국왕]] [[영조]]의 두 번째 [[후궁]]이다. 부군 [[영조]] 이후 [[사도세자]]부터 [[정조(조선)|정조]], [[순조]], [[효명세자|문조]], [[헌종(조선)|헌종]], [[철종(조선)|철종]]대까지 모두 혈통상 영빈 이씨의 직계 자손들이다. [[화평옹주]], [[화협옹주]], [[사도세자]], [[화완옹주]]의 생모이며 [[정조(조선)|정조]]의 [[친할머니]]이다. 아버지는 증 찬성 이유번(李楡蕃)이며, 어머니는 한양 김씨를 본관으로 두었던 김우종(金佑宗)의 딸이다. 사후에는 '''[[선희궁]](宣禧宮)'''으로 불렸다.[* 당초에 부군 영조의 뜻에 따라 사도세자의 [[임오화변|대처분]]을 청한 일 등이 [[종묘]][[사직]]을 보호한 일이라며 '의열(義烈)'이라는 어지간한 구국영웅도 받기 힘든 [[시호]]가 내려졌으나, 손자인 [[정조(조선)|정조]]대에 이르러 사당의 명칭을 시호를 딴 의열궁에서 선희궁으로 개칭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. 그리고 시호 역시 대한제국 시기에 사도세자를 황제로 추숭하면서 어미로서 추존황제에 대한 대처분을 요청한 것이 영 거시기했던지 (대략 어질고 너그럽다는 평범한 의미의) '소유(昭裕)'로 고쳤다. ] [[사도세자]]를 포함한 대부분의 자식들이 불우한 인생을 살았고 심지어 영조에게 아들의 [[임오화변|대 처분]]을 직접 요청한 이후에는 여생을 [[단장]](斷腸)[* 새끼 원숭이(자식)를 잃은 어미 원숭이의 심정은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지는 것과 같다.]의 심정으로 피눈물나게 살았던 비운의 여성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